4복음서

사복음서13: 니고데모와 거듭남의 길

inside and faith 2026. 4. 11. 21:18
매일주와동행 예수님편의 13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 자신이 성전임을 선포하다'를 공부하고 묵상하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한밤 중에 예수님을 몰래 찾아왔던 사람으로 잘 알려진 네모데모에게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한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13. 니고데모와 거듭남의 길

(1) 본문말씀: 요한복음 3장 1~21절

성경의 해당 본문을 먼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 들어가기 전, 본문 배경 이해

요한복음 3장에는 니고데모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으며 동시에 유대인의 지도자로 불렸습니다. 바리새인은 단순히 개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바리새파라는 종파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에는 바리새파 외에도 사두개파, 에세네파 등 여러 종파가 존재했습니다. 사두개파는 성전 제사와 제사장 계층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부활을 부정했고, 에세네파는 공동체 생활과 철저한 율법 준수를 강조하며 광야 등지에서 은둔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비해 바리새파는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철저히 지키며, 회당을 중심으로 백성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바리새파의 역사는 바빌론 포로 이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민족 정체성을 보존하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이후 헬라와 로마의 지배를 거치면서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는 집단이 형성되었고, 마카비 시대를 지나면서 바리새파는 점차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백성들의 일상과 신앙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바리새파의 잘한 점은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치며, 회당을 통해 신앙 교육을 확산시켰습니다. 또한 율법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려는 노력은 백성들이 신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데 지나치게 형식과 규례에 치우쳐 본질을 놓치기도 했으며, 외적인 행위와 규범을 강조하다가 내적인 마음과 진정한 믿음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자주 책망하신 이유도 바로 이러한 형식주의와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유대인의 지도자라 불린 것은 그가 산헤드린 공회, 즉 유대 사회의 최고 의결기관에 속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산헤드린은 헬라어 synedrion(회의)에서 유래한 말로, 바빌론 포로귀환 후 건축이후 시대인 제2성전 시대에 활동한 최고 종교·사법 기관입니다. 전통적으로 71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대산헤드린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각 지역에는 23명으로 이루어진 소산헤드린이 설치되어 지역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산헤드린은 율법 해석과 종교적 판결, 사회적 문제까지 다루었으며, 대제사장과 장로, 서기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지도자들이 포함된 권위 있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지배 아래 점차 권한이 제한되었고, 서기 70년 성전 파괴 이후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으로 인정하며,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시 기록만으로는 그가 즉시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후의 본문을 보면, 요한복음 7장에서 그는 공회에서 예수님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며,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에 참여합니다. 이러한 기록은 그가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 점차 다른 태도를 보였음을 보여줍니다.

니고데모의 등장은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적 구조와 지도자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을 제공합니다. 그는 율법과 전통 속에서 자라난 바리새파 사람이었으며, 사회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동시에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의 행보는 그가 예수님과 관련하여 일정한 변화를 겪었음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3장을 읽을 때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면, 본문 속 대화와 그 의미를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주요 등장인물들

① 니고데모: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율법에 능통하였으나 예수님을 찾아와 진리를 배우고자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②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로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진리를 가르치시며 영생의 길을 밝히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③ 성령: 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서, 바람과 같이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④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분이십니다.

(4) 본문의 주요 내용

본문 요한복음 3:1~21은, 5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니고데모의 질문과 예수님을 찾은 이유 (요한복음 3:1~2)

1)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으며 유대인의 지도자였다.

그는 율법에 능통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율법과 전통에만 머물지 않고, 더 깊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2)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 등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권위를 가진 선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의 행위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된 사건임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고백하였다. 이는 그가 예수님 안에서 참된 권위를 발견했음을 보여준다.

3) 니고데모가 이러한 고백을 일찍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시의 많은 선생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전과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참된 권위를 찾기 어려웠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단순히 남들의 눈치를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생각 자체가 당시 지식인층과는 다른 위험한 생각이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으로 인정하는 것은 곧 당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권위를 부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니고데모는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대화를 시작하였다.

2. 거듭남의 의미와 성령의 역사 (요한복음 3:3~8)

1)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어떤 상황에 있고 왜 그런 생각과 질문을 하는지를 이해하셨다. 그는 율법과 전통 속에서 자라난 지도자였지만, 참된 진리를 찾고자 하는 갈망을 가진 사람이었다.

2) 예수님은 그의 마음과 고민을 공감하시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라는 깊은 말씀을 꺼내실 수 있었다.

이는 책망이 아니라, 니고데모가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이해해야 할 진리를 제시하신 것이다.

3) 니고데모는 이 말씀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물으며, 육체적 출생의 차원에서만 생각했다.

4)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단순한 육체적 차원이 아닌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셨다.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를 바람에 비유하셨다.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듯이, 성령의 역사도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명히 나타난다. 이는 니고데모가 단순히 지식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더 깊은 차원의 영적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말씀이다.

3.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증언 (요한복음 3:11~15)

1)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하늘로부터 온 분임을 밝히셨다.

여기서 “우리”라는 표현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일치된 증언을 드러내거나,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위 있는 증언임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인간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오신 분으로서 하늘의 진리와 권위를 증언하신 것이다.

2) 예수님은 이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을 언급하셨다(민수기 21장).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장대 위에 놋뱀을 들었고 그것을 바라본 자들이 살았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들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십자가 사건을 미리 보여주신 것으로, 장대 위의 놋뱀을 바라본 자들이 생명을 얻었던 것처럼, 십자가에 들리신 인자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3)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호 휘오스 투 안쓰로푸)라 부르셨다.

헬라어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 표현은 단순히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약에서는 에스겔서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호칭으로, 다니엘서 7장에서는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권세와 나라를 받는 영광스러운 존재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아, 겸손히 고난을 짊어지시는 인자이면서 동시에 하늘 권세를 가지신 영광의 인자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4) 이는 그가 이해하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믿음의 눈을 확장시킴으로 십자가와 영생을 바라보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 것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율법과 성경에 익숙하다는 점을 존중하시며, 그가 가진 지식의 토대 위에서 복음의 실체를 깨닫도록 인도하셨다.

4. 하나님의 사랑과 독생자의 주심 (요한복음 3:16~21)

1)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의 절정에서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① 이 말씀은 단순히 니고데모 개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한 보편적 구원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이나 계층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사랑하셨다. 그 사랑의 증거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사건이다.

② 하나님은 단순히 감정적 사랑을 표현하신 것이 아니라, 독생자를 주심이라는 가장 희생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나타내셨다. 이는 인간의 행위나 율법의 완성 여부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의 본질을 드러낸다.

③ 또한 이 말씀은 심판과 구원의 대조를 보여준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미래의 심판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이미 결정되는 영적 현실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은 니고데모에게 새로운 관점, 곧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율법과 행위에 의존하던 그의 사고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의 길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5. 총괄: 공감으로 깨우치시고, 믿음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

1)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공감하시고 깨우치게 하심

①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생물학적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신념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무지를 단순히 꾸짖지 않으시고, 먼저 그의 상황과 마음을 공감하셨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 그의 내적 갈등과 질문을 이해하시면서 그에게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그의 삶과 마음을 존중하는 공감적 접근이었다.

②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함'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는 표현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었다. 오히려 니고데모에게 “너의 역할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말씀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제시하신 것이다. 이는 니고데모를 공감할 뿐만 아니라 직면을 시키신 것으로, 그의 정체성과 사명을 깨닫게 하시는 과정이었다.

③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모세의 놋뱀 사건에서부터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함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심 등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신 것이다.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율법적 지식과 배경을 토대로, 믿음의 눈을 확장시켜 십자가와 영생을 바라보게 하신 것이다.

④ 결국 예수님의 공감하심과 직면하게 하심은 니고데모가 신념의 틀을 깨고 새로운 차원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돕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신념을 넘어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중요한 본보기를 보여 주신 것이다.

2) 니고데모의 신념에서 믿음으로 전환

①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의 절정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으로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셨다. 이 말씀은 단순히 니고데모 개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메시지였다.

② 니고데모가 이 말씀을 즉시 완전히 깨달았는지 여부는 성경이 명확히 말하지 않기에 우리도 알 수 없다. 그는 곧바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역할은 달랐다. 오히려 요한복음 7장에서 공회 앞에서 예수님을 옹호하고, 요한복음 19장에서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모습은, 당시 두려움에 숨어 있던 제자들과 비교해도 더 성숙하고 용기 있는 믿음의 실천을 보여준다.

③ 따라서 니고데모의 여정은 단순히 신념을 깨뜨리고 믿음으로 나아간 과정일 뿐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헌신과 실천을 통해 믿음을 증거한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믿음은 반드시 즉각적인 깨달음이나 특정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 속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헌신과 실천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④ 결국 니고데모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신념을 넘어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복음의 본질을 일깨워 주며, 공감과 깨우침을 통해 더 깊은 믿음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준다.

(5) 말씀을 따라 묵상하기

1 단계 묵상:

오늘 공부한 말씀 속에서 '개인 혹은 관계에 따른 다양한 내면의 모습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예시들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깊이 묵상할 것을 1~2개 찾아 (  )에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1) 니고데모는 율법과 지식에 근거하여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신념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다. 그러나 그 신념은 거듭남의 말씀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나는 내 경험과 지식에만 의지하여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히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  )

2)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올 만큼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모습도 있었다.

나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 때문에 용기를 내어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고 있는가? (  )

3)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무지를 꾸짖지 않고,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나는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만날 때, 정죄하기보다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며 인내로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답답함 등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  )

4)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며, 현실적 한계에 갇혀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신념의 틀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반응하는가? (  )

5)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을 들어, 십자가의 구원을 설명하셨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미 내 삶 속에 보여주신 은혜의 사건들을 기억하며 믿음을 새롭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신념으로 인해 이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려 하는가? (  )

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단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랑을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고 있는가? (  )

2단계 묵상:

1단계에서 찾은 항목을 묵상제목으로 요약해 보세요. 이어서 내면 탐색 질문을 읽으시고, 묵상한 후 답해 보세요.
(2단계 질문지는 1개의 묵상제목에 대한 1 Set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인 묵상은 아래의 7가지 묵상 순서를 참조하여 별도로 작업하시면 좋겠습니다.)

 묵상제목: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7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기

1) 나의 느낌들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개 선택, 가능합니다.)

  • 자기연민, 자기분노, 자기역겨움, 상실감, 공허감, 우울감, 정지된느낌, 고립감, 부러운느낌, 부끄러운느낌
  • 화난느낌, 서운함, 원망감, 불신감, 혐오감, 시기ㆍ질투심, 앙심, 경멸감, 증오심
  • 불안감, 버려진느낌, 공포감,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굴욕감, 절망감, 혼란스럼
  • 즐거운느낌, 성취감, 소속감, 사랑받는느낌, 자부심, 존재감, 기대감, 신뢰감, 평안한느낌, 감사한마음, 안도감,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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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그 상황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 두려워했던 것, 상처받았던 것들이 무엇이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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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느낌들이 이전에도 반복된 적이 있었는가?
(비슷한 상황이나 관계에서 반복된 감정이나 느낌이 있었는지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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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느낌들이 반복되었을 때,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어떤 심리적 해석이나 신념이 만들어졌을까?  
(예: “나는 늘 무시당한다”, “나는 없는 듯 사는 게 나아”, “나는 실패할 것이다”
“아무 것도 생각지도 느끼지도 말자” 등 내면의 해석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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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금도 나는 이런 느낌과 해석, 혹은 신념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이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이 느낌이나 심리적 해석이 감정이 나를 지배하도록 둘 것인지, 말씀 안에서 다시 바라볼 것인지 선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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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 느낌과 해석, 신념을 바꾸고 싶다면, 나는 어떻게 바꾸기를 원하는가? 나의 의지가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기도와 묵상을 해보자.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 그분의 시선은 나의 느낌보다 더 깊은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묵상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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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령님은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고 계신다. 그분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이때 나의 새로운 느낌은 무엇인가? 
(조용히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지금 내게 주시는 위로와 도전의 음성을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혹은 침묵 가운데 떠오르는 진실을 통해' 들어보고 느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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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묵상:

자신이 찾은 제목과 관련한 기도문과 요약문을 써 보세요. 
(마음에 떠오른 기도문이나 성령님께 중보를 부탁하고 싶은 내용 적어보기, 믿음의 눈으로 느낀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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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문을 따라 드리는 기도

(먼저 아래의 기도문을 읽어보시고, 따라 하시거나 참조하시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때로 니고데모처럼 지식과 신념에 갇혀, 새로운 생명의 길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간 그의 모습 속에서, 저의 갈급함과 두려움이 함께 비춰집니다.
예수님, 거듭남을 말씀하실 때 저는 현실의 한계만 바라보며 의심했던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의 무지를 꾸짖지 않으시고, 차근차근 깨우쳐 주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을 통해 십자가의 구원을 보여주신 것처럼, 저의 이해할 수 있는 자리에서 믿음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저를 향한 사랑의 고백임을 깨닫습니다. 그 사랑은 단지 지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저의 삶 속에서 경험되고 흘러가야 할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니고데모가 점차적으로 신념에서 믿음으로 옮겨간 것처럼, 저도 제 자리에서 믿음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두려움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며 용기 있게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오늘 성경공부를 마치며 중요 말씀을 암송해 보시기 바랍니다.

  암송대상: 요한복음 3장 16절 (개역개정)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