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주와동행 예수님편의 18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 사명선언서를 선포하시다'를 묵상하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시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고치시면서 그들을 부르시는 내용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18. 예수님, 사람들을 만나고 고치시며 부르시다
(1) 본문말씀: 누가 5:1~39, 마태 4:18~22, 8:1~4, 9:1~17, 마가 1:16~20, 1:40~2:22
성경의 해당 본문을 먼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 들어가기 전, 본문 배경 이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첫 만남이 강조됩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듣고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가며, 이어서 시몬 베드로와 빌립, 나다나엘이 합류합니다. 이들은 아직 직업을 내려놓은 정식 제자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따르며 함께 다니는 인턴적 제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이런 배경을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정식 부르심의 장면을 앞에 배치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어부의 삶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르는 순간을 강조함으로써, 사역과 제자 공동체가 동시에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때 본문에 등장하는 “갈릴리 바다”는 사실 호수이며, 성경에서는 ‘갈릴리 바다’, ‘게네사렛 호수’, ‘디베랴 바다’, ‘긴네렛’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는 지역 이름이나 도시 이름, 호수의 모양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복음서마다 다른 명칭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누가복음은 또 다른 관점을 취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먼저 드러내고, 그 권위 아래 제자들이 부름받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관점에서는, 갈릴리 사역 동안 제자들이 이미 인턴처럼 활동하고 있었고, 사역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야 정식으로 제자로 세워지는 순간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서마다 사건의 순서가 다른 것은 단순한 중복이 아니라, 각 기자가 가진 신학적 강조점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만남의 시작을 보여주고, 마태·마가복음은 헌신의 순간을 기록하며, 누가복음은 권위 아래 부르심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제자들의 부르심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첫 만남 → 인턴적 동행 → 정식 부르심 → 열두 제자로 세움이라는 단계적 과정 속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단번에 세우신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만나시고 부르시며, 점진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제자도의 본질이 단순한 순간의 결단이 아니라, 만남과 동행, 헌신과 사명으로 이어지는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갈릴리 호수의 다양한 이름을 통해, 복음서 기자들이 사건을 기록할 때 지역적 배경과 신학적 강조를 함께 담아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주요 등장인물들
① 시몬 베드로: 어부로서 생업에 종사하던 중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르며, 이후 제자 공동체의 중심 인물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② 안드레: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여 형과 함께 제자의 길을 걸은 사람이었습니다.
③ 야고보: 세베대의 아들로서, 형제 요한과 함께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④ 요한: 야고보의 형제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받은 제자이며, 후에 요한복음을 기록하여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증언한 사람이었습니다.
⑤ 한 나병환자: 사회적으로 격리된 고통 속에 있었으나, 예수님께 나아와 깨끗하게 되기를 간구하여 믿음으로 치유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⑥ 중풍병자: 스스로 걸을 수 없었으나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죄 사함과 육체의 치유를 동시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⑦ 레위(마태): 세리로서 사람들에게 멸시받던 직업을 가졌으나,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제자로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세워진 사람이었습니다.
⑧ 바리새인들: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 했으나, 때로는 형식과 자기 의에 치우쳐 예수님의 사역을 비판하며 갈등을 빚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⑨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말씀을 가르치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죄를 사하시며, 제자 공동체를 세우신 구세주이셨습니다.
⑩ 하나님: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예수님의 사역과 제자들의 부르심을 통해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 분이십니다.

(4) 본문의 주요 내용
본문 누가 5:1~39, 마태 4:18~22, 8:1~4, 9:1~17, 마가 1:16~20, 1:40~2:22 은 5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예수님, 제자들을 부르시다 (눅 5:1~11, 마 4:18~22, 막 1:16~20)
1)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후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밤새 수고했으나 얻은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다. 그 결과 많은 물고기를 잡아 배가 가라앉을 정도가 되었다.
2) 이때 베드로는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예수님을 만나고 함께 다녔지만, 이전에는 이런 고백을 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말씀을 알고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깨닫는 것의 차이를 보여준다. 깨달음은 자신의 삶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일어나며, 그 이전에는 알거나 이해해도 삶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것은 단순한 지식의 차원을 넘어, 베드로의 삶 속에 직접 들어가셔서 진정한 접점을 만드신 사건이었다. 그가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한 표적을 통해 비로소 정식 제자가 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누가복음은 이 장면을 베드로만의 사건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함께 있던 안드레, 야고보, 요한도 이 기적을 목격하며 놀랐다고 기록한다. 즉, 이들도 베드로와 동일한 충격과 깨달음을 경험한 것이다. 따라서 누가복음은 제자 부르심을 공동체적 체험으로 보여주며, 제자들이 함께 사명으로 부름받는 과정을 강조한다.
3)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같은 사건을 조금 다르게 기록한다.
두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를 지나가실 때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다고 전한다. 이어서 야고보와 요한도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여 따랐다. 여기서는 즉각적인 순종이 강조된다.
따라서 누가복음은 제자 부르심을 기적과 죄인 됨의 자각 속에서 사명으로의 부르심으로 보여주고, 마태·마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곧바로 반응하는 결단의 순간을 강조한다. 같은 사건이지만, 누가는 제자 부르심의 내적 변화와 공동체적 깨달음을 드러내고, 마태·마가는 제자도의 본질인 즉각적 순종을 드러내는 것이다.
2. 예수님, 병든 자를 고치시다 (눅 5:12~16, 마 8:1~4, 막 1:40~45)
1) 예수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 나병환자가 나아와 간청하였다.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셨다. 즉시 그의 나병이 떠나갔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증거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권능과 자비가 병든 자의 삶 속에 직접 나타난 장면이었다.
2) 누가복음은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온몸에 나병이 들린 사람”이라고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누가가 의사였다는 배경과 연결되어, 병자의 상태를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만지셨다는 점을 강조하여, 사회적으로 격리된 나병환자에게 인격적 접촉을 통해 치유를 베푸셨음을 드러낸다.
3) 마태복음은 이 사건을 예수님의 산상수훈 직후에 배치한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권위가 단순히 가르침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삶 속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능력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이다. 마태는 사건을 간결하게 기록하며, 예수님의 권위와 말씀의 성취를 강조한다.
4) 마가복음은 환자의 간청을 더 생생하게 묘사한다.
나병환자가 무릎 꿇고 간구하며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그의 절박한 믿음을 드러낸다. 또한 마가는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겨'란 예수님의 마음을 담고 있다. 또한 그가 널리 소문을 퍼뜨려 예수님께서 더 이상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딴 곳에 계셨다고 기록한다. 이는 예수님의 치유가 사회적 파급력을 가져왔음을 보여준다.
5) 따라서 누가복음은 나병환자의 상태와 예수님의 인격적 접촉을 강조하며, 마태복음은 말씀과 권위의 성취를, 마가복음은 환자의 간절한 믿음과 사건의 사회적 반향을 강조한다. 같은 사건이지만, 누가는 치유의 깊이와 인간적 접촉, 마태는 권위와 성취, 마가는 믿음과 파급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3. 예수님, 죄를 용서하시며 치유하시다 (눅 5:17~26, 마 9:2~8, 막 2:2~12)
1)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실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 앞에 두려고 하였다.
무리가 많아 들어갈 수 없자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환자를 침상째로 달아내렸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율법 교사들과 바리새인들은 속으로 의문을 품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 어느 것이 쉽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는 곧 일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걸어갔다.
2) 예수님의 질문은 단순히 두 문장의 난이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병을 고치는 말이 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죄 사함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영역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치유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죄 사함의 권세를 확증하셨다.
3) 본문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기록한다. 이는 환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믿음을 인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죄 사함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믿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죄 사함은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관계 회복이므로, 환자 자신의 내적 믿음과 결단이 반드시 전제된다. 친구들의 믿음은 그를 예수님 앞에 데려오는 길을 열었고, 환자의 믿음은 죄 사함을 가능하게 했다.
4) 예수님은 병 치유와 죄 사함을 동시에 이루심으로, 자신이 단순한 치유자가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 인자임을 드러내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와 질병 모두를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셨음을 선언하는 사건이다.
4. 예수님, 레위를 부르시다 (눅 5:27~32, 마 9:9~13, 막 2:13~17)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리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셨다.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이후 그는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고,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를 보고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는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다.
2) 세 복음서는 각각 다음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① 누가복음은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기록한다. 이는 제자됨의 본질이 완전한 헌신과 결단임을 보여준다. 또한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을 통해, 앞선 사건들에서 드러난 권세와 치유, 죄사함을 종합하여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낸다.
② 마태복음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면서 세리 레위를 “마태”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한 이름 차이가 아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을 통해 자신의 삶이 변화되었음을 드러내는 개인적 간증의 성격을 띤다. “레위”라는 이름은 과거의 세리로서 사회적으로 죄인으로 취급받던 신분을 나타내지만, “마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을 지니며, 예수님을 만난 후 새로운 정체성과 사명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마태는 자기 복음서에서 과거의 이름 대신 새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예수님의 부르심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 사건임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③ 마가복음은 사건을 간결하게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부르심이 길 위의 일상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여, 예수님의 사역이 사회적 경계와 배제를 넘어서는 것임을 드러낸다.
3) 결국 레위의 부르심 사건은 예수님께서 누구를 부르시는지, 그리고 왜 오셨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예수님은 권세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병을 고치시고 죄를 사하실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죄인으로 여겨진 자들을 부르시며 그들과 함께하신다. 이는 예수님의 사명이 단순히 의인이나 종교적 엘리트가 아니라, 죄인을 회개로 이끄는 데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5. 예수님과 금식 논쟁 (눅 5:33~39, 마 9:14~17, 막 2:18~22)
1) 예수님께서 레위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신 이후,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에 대해 질문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는 단순한 식사 방식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기존 종교적 관습과 예수님의 사역 방식 사이의 충돌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로 대답하신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신랑이며 지금은 기쁨의 때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슬픔의 때가 아니라, 새로운 기쁨과 생명의 때이다. 그러나 신랑이 떠날 날이 오면 그때는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재를 암시하는 동시에, 제자들의 삶 속에서 금식의 의미가 새롭게 자리 잡을 것을 보여준다.
2) 마태복음은 질문의 주체를 요한의 제자들로 명확히 기록한다.
이는 단순히 바리새인들만이 아니라, 경건을 추구하는 다른 무리들까지도 예수님의 방식에 의문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여, 새로운 복음과 새로운 공동체의 필요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3) 마가복음은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요한의 제자들이 함께 금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기록한다.
이는 당시 금식이 종교적 경건의 대표적 표지였음을 보여준다. 마가는 또한 예수님의 비유를 간결하게 전하면서, 새로운 시대와 낡은 틀의 불일치를 강조한다.
4) 누가복음은 마지막에 “묵은 포도주를 좋아하는 자는 새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덧붙인다.
이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인간의 습성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금식의 형식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말씀하신다.
5) 결국 금식 논쟁은 단순한 종교적 규율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복음의 새로움과 그에 따른 삶의 변화를 강조하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낡은 틀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 포도주에 맞는 새 부대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6. 총괄: 신념에서 믿음으로
1) 이 본문들은 제자 부르심, 병 고침, 죄 사함, 레위의 부르심, 금식 논쟁 등 다양한 사건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건들의 공통된 메시지는 단순한 기적이나 부르심의 기록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신념에 묶여 있었고, 다른 이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믿음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본문들은 신념과 믿음의 대비, 그리고 신념에서 믿음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2) 본문 속에는 다양한 신념이 드러난다.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의 신념은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는 전통적 이해에 머물러 있었고,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마태의 집에서 잔치가 열렸을 때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의 신념은 경건의 형식과 종교적 관습에 묶여 있었으며, 새로운 시대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신념은 인간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기준과 관습에 기초하기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3) 반면 본문에는 분명한 믿음이 나타난다.
베드로는 많은 물고기를 잡은 사건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나병환자는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의 권능을 신뢰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은 지붕을 뜯는 행동으로 믿음을 드러냈고, 환자 자신도 죄 사함을 받아들였다. 또한 예수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씀을 통해 믿음이 신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임을 가르치셨다. 믿음은 인간의 기준이나 관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권세를 신뢰하는 태도이다.
4) 신념과 믿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혼재되어 있다.
신념은 인간의 경험과 전통, 관습에서 비롯되며 때로는 하나님을 향한 길을 막을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권세를 신뢰하는 데서 비롯되며, 새로운 삶과 관계를 열어 준다. 따라서 신념과 믿음을 구별하는 방법은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신념은 인간의 기준에 머물지만, 믿음은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데서 드러난다. 신념은 과거와 형식에 묶이지만, 믿음은 현재와 미래를 열어 간다. 결국 신념과 믿음을 구별하는 길은 예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붙들고, 그 말씀을 따라 결단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5) ‘신념에서 믿음으로의 전환’은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당시의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음에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념에 머물러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인 자들은 믿음을 얻었다. 즉 말씀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신념이 믿음으로 전환된다. 신념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도 변하지 않을 수 있지만, 믿음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롭게 시작된다.
따라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단순히 하나님 곁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결단을 통해 신념이 믿음으로 전환되도록 나아가야 한다.

(5) 말씀을 따라 묵상하기
1 단계 묵상:
오늘 공부한 말씀 속에서 '개인 혹은 관계에 따른 다양한 내면의 모습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예시들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깊이 묵상할 것을 1~2개 찾아 ( )에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1) 베드로는 풍성한 고기를 잡은 사건 앞에서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며 겸손히 엎드린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예수님을 여러 번 만났음에도 깊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나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겸손히 고백하며 순종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깨달음 없는 습관적 신앙에 머물러 있는가? ( )
2) 나병환자는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며 예수님의 권능을 신뢰한다. 그러나 사회적 격리와 절망 속에서 스스로를 포기할 수도 있었다.
나는 내 삶의 결핍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절망과 체념에 묶여 있는가? ( )
3)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지붕을 뜯어 환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오는 적극적인 믿음을 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무리 속에서 방관하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적극적인 믿음을 실천하는가, 아니면 무관심 속에 머물러 있는가? ( )
4)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죄 사함과 치유를 경험한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같은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도 의심과 거부로 반응했다.
나는 말씀을 받아들여 믿음으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의심과 고집으로 신념에 갇혀 있는가? ( )
5)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하는 예수님을 비난하며 배척했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기꺼이 결단하는가, 아니면 기존의 기준과 편견으로 거부하는가? ( )
6) 예수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씀으로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삶을 강조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묵은 포도주를 더 좋아하며 새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말씀과 삶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익숙한 과거와 형식에 안주하는가? ( )
2단계 묵상:
1단계에서 찾은 항목을 묵상제목으로 요약해 보세요. 이어서 내면 탐색 질문을 읽으시고, 묵상한 후 답해 보세요.
(2단계 질문지는 1개의 묵상제목에 대한 1 Set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인 묵상은 아래의 7가지 묵상 순서를 참조하여 별도로 작업하시면 좋겠습니다.)
☞ 묵상제목: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7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기
1) 나의 느낌들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개 선택, 가능합니다.)
- 자기연민, 자기분노, 자기역겨움, 상실감, 공허감, 우울감, 정지된느낌, 고립감, 부러운느낌, 부끄러운느낌
- 화난느낌, 서운함, 원망감, 불신감, 혐오감, 시기ㆍ질투심, 앙심, 경멸감, 증오심
- 불안감, 버려진느낌, 공포감,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굴욕감, 절망감, 혼란스럼
- 즐거운느낌, 성취감, 소속감, 사랑받는느낌, 자부심, 존재감, 기대감, 신뢰감, 평안한느낌, 감사한마음, 안도감, 자신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나는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그 상황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 두려워했던 것, 상처받았던 것들이 무엇이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이 느낌들이 이전에도 반복된 적이 있었는가?
(비슷한 상황이나 관계에서 반복된 감정이나 느낌이 있었는지 살펴보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이 느낌들이 반복되었을 때,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어떤 심리적 해석이나 신념이 만들어졌을까?
(예: “나는 늘 무시당한다”, “나는 없는 듯 사는 게 나아”, “나는 실패할 것이다”
“아무 것도 생각지도 느끼지도 말자” 등 내면의 해석을 찾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 지금도 나는 이런 느낌과 해석, 혹은 신념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이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이 느낌이나 심리적 해석이 감정이 나를 지배하도록 둘 것인지, 말씀 안에서 다시 바라볼 것인지 선택하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6) 이 느낌과 해석, 신념을 바꾸고 싶다면, 나는 어떻게 바꾸기를 원하는가? 나의 의지가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기도와 묵상을 해보자.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 그분의 시선은 나의 느낌보다 더 깊은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묵상해 보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7) 성령님은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고 계신다. 그분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이때 나의 새로운 느낌은 무엇인가?
(조용히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지금 내게 주시는 위로와 도전의 음성을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혹은 침묵 가운데 떠오르는 진실을 통해' 들어보고 느껴보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단계 묵상:
자신이 찾은 제목과 관련한 기도문과 요약문을 써 보세요.
(마음에 떠오른 기도문이나 성령님께 중보를 부탁하고 싶은 내용 적어보기, 믿음의 눈으로 느낀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6) 본문을 따라 드리는 기도
(먼저 아래의 기도문을 읽어보시고, 따라 하시거나 참조하시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때로 삶의 깊은 자리에서 제 한계를 마주합니다. 베드로가 풍성한 고기를 잡고서야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했던 것처럼, 저도 경험을 통해서만 깨닫는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저를 부르시고, 새로운 길로 이끄십니다.
나병환자가 절망 속에서도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했듯이, 저도 제 삶의 결핍 속에서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기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에 눌려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저를 붙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지붕을 뜯어 그를 예수님 앞에 데려온 것처럼, 저도 다른 이들을 믿음의 자리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관심과 방관 속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을 실천하게 하소서.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듯이, 저도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기꺼이 결단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편견에 묶이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정체성과 사명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새로운 말씀과 새로운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익숙한 과거와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믿음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용기를 갖게 하소서.
하나님의 임재가 가까이 있어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전히 신념 속에 머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결단을 통해 신념이 믿음으로 전환되도록 저를 이끌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오늘 성경공부를 마치며 중요 말씀을 암송해 보시기 바랍니다.
☞ 암송대상: 누가복음 5장 32절 (개역개정)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4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복음서20: 안식일의 주인 예수님과 제자들 (1) | 2026.04.28 |
|---|---|
| 사복음서19: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와 유대인, 믿음의 갈림길 (0) | 2026.04.26 |
| 사복음서17: 예수님, 사명선언서를 선포하시다 (0) | 2026.04.20 |
| 사복음서16: 왕의 신하 아들이 살아남, 표적을 넘어서는 믿음 (2) | 2026.04.17 |
| 사복음서15: 수가성 여인과 영원한 생수 (0) | 2026.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