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주와동행 예수님편의 19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 사람들을 만나고 고치시며 부르시다'를 묵상하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베데스다 연못 사건으로 많이 알려진 한 병자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비난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내용을 묵상하기로 하겠습니다.

19.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와 유대인, 믿음의 갈림길
(1) 본문말씀: 요한복음 5장 전체
성경의 해당 본문을 먼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 들어가기 전, 본문 배경 이해
예루살렘 성 안에는 베데스다라 불리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연못이 양문 곁에 있고 행각 다섯 개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양문은 성전 제사에 쓰일 양들이 드나들던 문으로, 성전과 제사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연못 주위에 세워진 다섯 개의 행각은 병자들이 그늘에 머물며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던 장소였습니다. 다섯이라는 숫자는 율법을 상징한다고 보는 해석도 있어, 이곳은 단순한 연못이 아니라 율법과 자비가 만나는 자리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 연못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는 자가 병이 낫는다고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요한복음의 초기 고대 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나타나지 않기에, 실제로 초자연적인 치유가 있었는지보다는 사람들의 신념과 전승이 병자들을 그곳에 모이게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요한복음은 연못 자체의 능력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과 권위가 치유의 근원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안식일에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문제 삼아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율법은 안식일에 노동을 금했지만, 병을 고치는 행위 자체를 직접적으로 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세밀히 확장하여 치료 행위도 노동으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치유와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은 그들의 전통적 기준에서는 금지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율법 본문 자체에는 위배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된 의미가 생명을 살리고 선을 행하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5장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과 동일시하신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내 아들”이라 부르신 적이 있습니다. 이는 왕과 하나님 사이의 특별한 언약적 관계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아들’이라는 표현을 상징적 호칭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아들로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신성 모독으로 여겨졌고,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배경을 이해하면 요한복음 5장은 단순히 병자가 치유된 사건을 넘어, 예수님께서 율법을 넘어서는 권위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드러내는 장으로 읽히게 됩니다.
(3) 주요 등장인물들
① 예수: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며 아버지와 하나 되신 권세를 드러내신 주님이십니다.
② 38년 된 병자: 오랜 세월 연못가에 누워 있었으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일어나 걸은 사람입니다.
③ 유대인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비난하며 그분의 권위를 거부한 이들이었습니다.
④ 세례 요한: 빛을 증언한 자로서 예수님을 가리켰으나 사람들은 잠시 그의 증언만을 기뻐했습니다.
⑤ 하나님: 아들을 보내시고 그에게 생명과 심판의 권세를 주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신 아버지이십니다.

(4) 본문의 주요 내용
본문 요한복음 5장은, 5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베데스다 연못의 치유 (요 5:1~9)
1) 예수께서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연못가에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려 38년 동안 병으로 고통받으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2)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오래된 병임을 아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질문은 단순히 병을 고치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그의 마음과 상태를 드러내는 물음이었다.
3) 병자는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나는 못 들어간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낫기를 원합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무력함과 남탓을 말하였다. 그의 대답 속에는 절망과 체념이 담겨 있었다.
4)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 없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순간 그는 곧 나아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능력이 되어, 오랜 세월 절망 속에 있던 사람을 새로운 삶으로 일으켜 세우셨다.
5) 이 사건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다. 믿음 없는 자에게도 다가오시는 주님의 은혜와 권위를 보여주는 표적이다. 또한 인간의 무력감과 체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며,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새로운 생명의 사건이다.
2. 안식일 논쟁과 갈등 (요 5:10~18)
1)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병이 나아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간 것을 문제 삼아 비난하였다. 병자는 자신을 고친 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단지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었다.
2) 예수님은 이후 성전에서 그를 다시 찾아가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 말씀은 그의 병이 단순한 육체적 질환을 넘어, 죄와 연결된 더 깊은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헬라어 원문에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현재 명령형은 지속적으로 반복해 온 죄의 습관을 이제 중단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은 그가 어떤 죄를 범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본문 속 그의 태도를 볼 때 타인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거나 남을 헐뜯는 모습이 있었을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다. 오랜 병으로 인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그를 돕는 이가 없었던 것도, 그의 삶 속에 관계적 죄가 자리했음을 암시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병의 회복 자체보다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 더 본질적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치유의 은혜를 주신 후, 그 은혜의 목적이 단순한 육체적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삶으로 이끄는 데 있음을 알려주셨다.
3)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고치신 이유는, 병이 나아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 있어 절대적인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의 소망을 들어주심으로 은혜를 베푸셨고, 그 은혜의 목적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삶으로 이끄는 데 있었다. 그러나 병자는 그 은혜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는 감사와 믿음으로 반응하기보다,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4) 어쩌면 그는 예수님께서 죄를 지적하신 말씀을 불쾌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성경은 그가 자발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알렸다고 기록한다. 이는 은혜를 받은 자가 반드시 올바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표적을 보고 믿음으로 나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은혜를 불편하게 여기거나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5) 이 사건은 인간의 연약함과 은혜의 본질을 동시에 드러낸다.
예수님은 믿음 없는 자에게도 먼저 은혜를 베푸셨지만, 그 은혜의 목적은 죄에서 돌이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병자는 그 은혜를 붙잡지 못하고 자기보호와 남탓으로 반응하였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도전이 된다. 은혜를 받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감사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삶이야말로 참된 치유와 구원의 길임을 보여준다.
3.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심판의 권위 (요 5:17~30)
1) 안식일의 본질과 하나님의 일 (17~21절)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비난에 대해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생명을 보존하시고 세상을 붙들고 계시므로, 그분의 일을 아들도 동일하게 행한다는 선언이었다. 안식일은 무조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은 "아들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행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완전한 일치 속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시는 것처럼, 예수님도 생명을 주시는 일을 행하신다. 따라서 21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예수님도 동일하게 행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식일의 본질을 새롭게 밝혀주신 것이다.
2) 아들의 특별한 권위와 심판 (22~30절)
그러나 22절부터는 강조점이 달라진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단순히 아버지의 일을 따라 행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들이 심판의 주체가 되었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처럼 아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말씀은, 아들의 권위가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특히 24절에서 예수님은 표현을 바꾸어 “아들을 믿는 자”라고 하지 않고,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라고 하셨다. 여기서 강조점은 아들의 권위가 단순히 관계적 호칭에 있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 자체가 생명과 심판을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데 있다. 그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을 받지 않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이어서 "마지막 때에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생명과 심판의 권한을 구체적으로 가지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고, 그 심판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이어지며,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으로 이어진다.
4.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거들 (요 5:31~47)
1) 예수님은 먼저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자기 주장만으로는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아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다양한 증거와 증언을 제시하셨다.
ㆍ 첫째, 요한의 증언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한 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증언을 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의 증언에 의존하지 않고, 더 큰 증거를 말씀하셨다.
ㆍ 둘째,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표적)이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일을 예수님이 행하심으로, 그 자체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병자를 고치고 생명을 주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예수님이 동일하게 행하심으로 그분의 권위를 드러내셨다.
ㆍ 셋째, 아버지의 증언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을 증거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듣지 못했고, 그분의 형상을 보지 못했으며, 그 말씀이 그들 속에 거하지 않았다.
ㆍ 넷째, 성경의 증언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그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그들은 문자와 규정에 매여 본질을 놓쳤다.
2)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책망하셨다. 그들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도 결국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모세를 의지하면서도 모세의 글을 믿지 않았다.
5. 총괄: 병자와 유대인들의 믿음과 신념의 갈림길
1) 은혜를 받았으나 깨닫지 못한 병자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는 오랫동안 절망 속에 있었고, 그의 절대적인 소망은 병이 나아 걷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 여부와 상관없이 먼저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나 치유의 목적은 단순한 육체적 회복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삶으로 이끄는 데 있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말씀하시며 병보다 더 심각한 죄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는 은혜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감사와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며 표적을 보이신 것은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이었지만, 그는 그 선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죄를 짓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신념을 드러냈다.
2) 신념에 매여 믿음을 거부한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병자가 자리를 들고 간 것을 문제 삼으며 안식일 규정 위반에만 집중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말씀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표현에만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수님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이 너무나 당연했기에 곧바로 말씀하신 것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믿음과 신념의 차이가 드러난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생명으로 나아가지만, 신념에 갇힌 자는 말씀을 거부하고 갈등을 키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음을 선포하시며, 그 심판의 기준이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임을 밝히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신념에 매여 그 권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5) 말씀을 따라 묵상하기
1 단계 묵상:
오늘 공부한 말씀 속에서 '개인 혹은 관계에 따른 다양한 내면의 모습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예시들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깊이 묵상할 것을 1~2개 찾아 ( )에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1)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무능과 절망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늘 다른 사람 탓을 하며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다.
나는 내 삶의 문제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며 남을 탓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가? ( )
2) 병자는 예수님의 질문에 단순히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넣어줄 사람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문제의 본질보다 상황 탓만 하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나는 주님 앞에서 솔직히 내 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환경과 조건을 핑계 삼고 있는가? ( )
3) 예수님은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명령이었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단순히 위로로만 듣고 있는가, 아니면 실제로 순종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는가? ( )
4) 유대인들은 병자가 자리를 들고 간 것을 보고 안식일 규정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생명을 살리는 본질보다 규칙과 형식에만 매달렸다.
나는 신앙생활에서 형식과 규정만을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뜻과 생명을 살리는 본질을 붙잡고 있는가? ( )
5)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과 하나 되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행하신다는 선언이었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내 기준과 신념에 갇혀 주님의 일을 거부하고 있는가? ( )
6)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믿음을 선물로 주신 은혜의 선언이었다.
나는 주님께서 주신 믿음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의심과 불신 속에 머물러 있는가? ( )
2단계 묵상:
1단계에서 찾은 항목을 묵상제목으로 요약해 보세요. 이어서 내면 탐색 질문을 읽으시고, 묵상한 후 답해 보세요.
(2단계 질문지는 1개의 묵상제목에 대한 1 Set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인 묵상은 아래의 7가지 묵상 순서를 참조하여 별도로 작업하시면 좋겠습니다.)
☞ 묵상제목: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7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기
1) 나의 느낌들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개 선택, 가능합니다.)
- 자기연민, 자기분노, 자기역겨움, 상실감, 공허감, 우울감, 정지된느낌, 고립감, 부러운느낌, 부끄러운느낌
- 화난느낌, 서운함, 원망감, 불신감, 혐오감, 시기ㆍ질투심, 앙심, 경멸감, 증오심
- 불안감, 버려진느낌, 공포감,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굴욕감, 절망감, 혼란스럼
- 즐거운느낌, 성취감, 소속감, 사랑받는느낌, 자부심, 존재감, 기대감, 신뢰감, 평안한느낌, 감사한마음, 안도감, 자신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나는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그 상황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 두려워했던 것, 상처받았던 것들이 무엇이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이 느낌들이 이전에도 반복된 적이 있었는가?
(비슷한 상황이나 관계에서 반복된 감정이나 느낌이 있었는지 살펴보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 이 느낌들이 반복되었을 때,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어떤 심리적 해석이나 신념이 만들어졌을까?
(예: “나는 늘 무시당한다”, “나는 없는 듯 사는 게 나아”, “나는 실패할 것이다”
“아무 것도 생각지도 느끼지도 말자” 등 내면의 해석을 찾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 지금도 나는 이런 느낌과 해석, 혹은 신념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이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이 느낌이나 심리적 해석이 감정이 나를 지배하도록 둘 것인지, 말씀 안에서 다시 바라볼 것인지 선택하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6) 이 느낌과 해석, 신념을 바꾸고 싶다면, 나는 어떻게 바꾸기를 원하는가? 나의 의지가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기도와 묵상을 해보자.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 그분의 시선은 나의 느낌보다 더 깊은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묵상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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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령님은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고 계신다. 그분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이때 나의 새로운 느낌은 무엇인가?
(조용히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지금 내게 주시는 위로와 도전의 음성을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혹은 침묵 가운데 떠오르는 진실을 통해' 들어보고 느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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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묵상:
자신이 찾은 제목과 관련한 기도문과 요약문을 써 보세요.
(마음에 떠오른 기도문이나 성령님께 중보를 부탁하고 싶은 내용 적어보기, 믿음의 눈으로 느낀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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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문을 따라 드리는 기도
(먼저 아래의 기도문을 읽어보시고, 따라 하시거나 참조하시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던 병자의 모습 속에서 제 자신을 봅니다. 오랜 시간 삶의 무게에 눌려 희망을 잃고, 남을 탓하며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먼저 다가가 말씀하셨듯, 제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을 기억합니다.
주님, 저는 때로 주신 은혜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감사와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변명으로 가득 차 있었고, 표적을 보고도 마음을 닫아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라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의 본질을 놓치고 규정에만 매달렸던 것처럼, 저 역시 형식과 습관에 갇혀 본질을 잊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고, 아버지와 하나 되어 심판과 생명의 권세를 드러내셨습니다. 그 말씀 앞에서 저는 믿음과 신념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저에게 주신 믿음의 선물을 붙잡게 하소서. 의심과 불신 속에 머무르지 않고,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은혜를 받은 자로서 감사하며, 생명을 살리는 본질을 붙들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오늘 성경공부를 마치며 중요 말씀을 암송해 보시기 바랍니다.
☞ 암송대상: 요한복음 5장 24절 (개역개정)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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